암의 잠재적인 씨앗이 몸 안에 있어도 대다수는 이를 품은 채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왜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어떤 사람에겐 암이 되고, 어떤 사람에겐 그렇지 않을까?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MSK) 암센터 과학자들이 의학계의 이 오랜 수수께끼를 풀어냈다.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자극해 암으로 번지게 하는, '불쏘시개' 비슷한 단백질이 따로 있었다. 이 발견으로 암과 돌연변이 유전자를 바라보는 인식의 지형이 많이 바뀔 수 있다.
아울러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른 획기적인 항암 치료법이 개발될 거라는 기대도 제기된다.
"이 단백질 없으면 DNA 돌연변이 생겨도 암세포 생기지 않아"
MSK '암 생물학 유전학 프로그램'의 리처드 화이트 박사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3일(현지 시각)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논문으로 실렸다.
같은 돌연변이 유전자 세트(set)가 암을 유발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데 대표적 사례가 피부에 생기는 점과 흑색종(melanoma)이다.
점을 구성하는 세포는 유전적으로 비정상이며, 특히 BRAF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가진 경우가 많다. BRAF 돌연변이가 점 밖의 세포에 발현하면 종종 흑색종(melanoma)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점이 암으로 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화이트 박사는 이 의문점을 풀기 위해 동료 발달 생물학자인 로렌스 스투더(Lorenz Studer) 박사와 손을 잡았다. 10여 년의 연구 끝에 비밀을 풀어낸 게 이번 연구 결과다.
먼저 흑색종의 형성은, 어떤 세포의 DNA 돌연변이와 같은 세포에 켜지는 특정 유전자 세트의 공조 작용으로 나타나는 '종양 형성 능숙도(oncogenic competence)'에 의해 결정됐다. 흑색종이 되는 세포는, 보통 멜라닌 세포(melanocytes)엔 닫혀 있는 유전자 세트에 접근할 수 있었다.
멜라닌 세포가 이들 유전자에 접근하려면 폐쇄된 유전자의 문을 여는 단백질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 멜라닌 세포는 암과 연관된 DNA 돌연변이가 생겨도 이 단백질이 없으면 흑색종으로 변하지 않았다.
열쇠 역할을 하는 이 단백질이 바로 '염색질 변형 인자(chromatin modifying factor)'로 불리는 ATAD2였다.
ATAD2는 유전자 근처의 염색체 영역에 결합해 해당 유전자가 켜지게 한다. 이는 단백질 생성 코드로 번역되는 전령 RNA가 전사되게 한다는 의미다. ATAD2 같은 단백질은 유전체 자체보다 후생 유전자(epigenome)에 더 많이 작용한다.
연구팀은 제브라 피시(zebrafish·열대어의 일종)에 생긴 흑색종을 관찰하다가, 성숙한 멜라닌 세포보다 배아 단계 세포의 특징을 더 많이 보이는 다수의 유전자 무리를 발견했다.
그래서 BRAF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게 조작한 제프라 피시를 세 그룹으로 나눠 실험했다.
세포의 발달 단계에 따라 각각 신경관(neural crest), 멜라닌 모세포(melanoblast), 멜라닌 세포일 때 돌연변이 BRAF가 켜지게 하고 이에 맞춰 실험 그룹을 짰다.
수개월이 지나자 신경관과 멜라닌 모세포 단계의 물고기는, 돌연변이 BRAF 유전자가 활성화해 종양이 생겼지만, 마지막 멜라닌 세포 단계의 물고기는 종양 대신 점이 생겼다.
연구팀은 인간 다능성 줄기세포(hPSCs)에서 배양한 세 단계의 세포를 생쥐 모델에 이식한 실험에서 동일한 결과를 확인했다.
이어 제브라 피시 종양과 인간 줄기세포 유래 종양의 유전자 활성도를 비교 분석해 보니, ATAD2 단백질이 종양의 형성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드러났다.
임상 데이터 분석 결과, ATAD2 발현 수위가 높은 암 환자는 생존 예후가 극히 나빴다.
화이트 박사는 "지난 수십 년간 암을 가져오는 DNA 돌연변이로 두 가지 유형, 즉 발암 유전자가 활성화하거나 종양 억제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는 것만 생각했다"라면서 "이번에 확인한 종양 형성 능숙도를 세 번째 유형으로 추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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